어노인팅 9집을 듣고

어노인팅 9집을 들었습니다. 강명식 음악사님의 인도였고, 5집에 이어 음악적 세련미 역시 너무 좋더군요.
CD가 2장이었는데 둘째 것에는 '구제'와 '경건'의 상관관계에 대한 음악사님의 긴 멘트가 많이 있었습니다.

자크엘룰의 '하나님이냐 돈이냐'에서 인용한 멘트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거저 주는 것에 대한 내용들도 강조되었지요.
또한 찬양, 예배현장 이와 같은 것들이 삶 속에서 연장되어야 한다는 다소 길었지만
매우 설득력있는 멘트들이었지요.

그것이 CD로 수록되어서 많은 이들에게 들려질 것을 생각하니 좋은 효과가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면서 '삶이 묻어난 예배, 예배가 묻어난 삶'은 이 바닥 현실에 제시할 첫번째 화두이자
결국 마지막 화두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복음'과 '상황'에 대한 메시지, 신학이 목회자들과 찬양인도자라 불리는 이들에게조차
아직 널리 각인되지 못한 것임을 더욱 직감하게 됩니다.

결국 예배자는 '하나님나라운동가'로 살아내야 그 예배의 가치를 자타가 공인받게 됩니다.

Posted by daegwi

2010/08/28 09:42 2010/08/2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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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장 균형


내용


'균형'이라는 장에서 존스토트는 제자의 특징을 6가지로 이야기한다. 즉 다음과 같다.

1. 성장해야 하는 갓난아기
2. 교제를 나누어야 하는 산 돌
3. 예배드려야 하는 거룩한 제사장
4. 증거해야 하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5. 거룩해야 하는 거류민과 나그네
6. 시민이 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종


갓난아기로 비유함은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거듭남이란 사람의 인격에 성령이 가져다주시는 깊은 내면의 근본적인 변화다. 요점은 우리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성품과 지식을 통해서 거듭난 존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장이 필요한 갓난아이들처럼 다시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 즉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성장에 필수적인 것이다. 또한 교회를 세우시는 하나님을 주목하라. 어떤 것도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다. 우리는 어떻게 이 교회에 속하게 되는가. 세례를 통하여 가시적이고 외적인 교회에 속한다. 또한 우리는 서로에게 속해 있다. 건물을 상상할 때 하나님의 건물의 산 돌이란 이미지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제사장은 두가지 특권 즉,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특권, 희생 제사를 드리는 특권을 누린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제사장과 백성 사이의 이런 구별은 폐지되었다. 교회 전체가 제사장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도록 부름받은 거룩한 제사장이다. 그러나 제자의 모습이 아기들로서 개인적 성장, 건물의 돌같은 교제,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예배 뿐인가? 우리는 그분의 증인이 되도록 '거룩한 나라'로 부름을 받았다.


또한 이 땅의 거류민과 나그네가 되었다. 하늘의 거룩한 시민권에 대한 개념은 종종 세상적인 책임에서 손을 떼게 하는 오류를 범하곤 했다. 그러나 우리는 순례자임과 동시에 이 땅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갖고 있다.그것은 양심적인 하나님의 '종들'로 묘사된다. 자유를 오용하지 말되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며 하나님의 종으로서, 동료신자들, 하나님, 권세자들 등 모든 사람을 합당하게 공경해야 한다.


우리의 실패는 거의 모두 제자의 포괄적인 정체성을 잊어버리는 태만에서 나온다. 각 쌍들에서 우리는 균형을 유지하고, 한쪽을 희생함으로써 다른 쪽을 강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개인적인 제자와 공동적인 교제로, 예배와 일로, 순례자와 시민 둘 다로 부름받는다.



생각

종종 하나님나라의 특성이 우리가 한가지 개념으로 치닫고 싶어하는 본성에 위배되기에 이해되지도 만져지지도 않을 때가 있다. 균형을 말하는 장에서도 그런 점은 두드러진다. 한가지.. 많은 내용을 짧게 담고자 하니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역동적이지 못한 듯 하다. 그러나 포괄적 정체성을 잊는 것 자체가 태만함이란 사실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쉽게 생각하고 싶고, 쉽게 결론내리고 싶고, 쉽게 답을 얻고 결과를 얻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내가 이해하는 것이 전부라고 착각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나는 동시에 균형에 대해 신중함을 보이는 태도로 인해 아무런 액션도 못하고 주저하는 이가 많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 땅의 정치 문제에 있어서도, 경제문제에 있어서도 균형을 유지하려는 지적 만족에 머물러서 결국 아무런 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말이다. 개인적 경건이 부재하면서 공동체만 강조하고 이땅의 시민임을 강조하지만 땅에 너무 발을 붙인 나머지 타협하는 겉멋든 나그네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아닌가. 이 모든 균형에 대한 이해들은 이런 몇번의 요약과 짧은 대화로 해결되거나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글쎄.. 우리의 다음세대는 이것에 대해 치열한 토의도 할 필요없이 그들이 자라가는 신앙 공동체에서 자연스럽고 호흡처럼 이런 감각을 배우고 익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성장, 교제, 예배, 일, 나그네, 시민... 이 항목들에 나를 비춰본다. 하나님앞에서 그분의 눈으로 나를 보자....

Resident Aliens - "하나님의 나그네된 백성"이 이 장에 이어서 읽을 책이 아닐까. 추천해본다. 그 저자들이 쓴 '십계명', '주여, 기도를 가르치소서'가 같은 맥락의 책.




제7장 - 의존


내용


존스토트는 자신이 어느 주일 아침 우연히 넘어지면서 수술을 받고 한동안 재활치료를 받은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철저하게 다른 이들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경험을 얻고, 제자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의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도 그러셨던 것처럼 노년에 들면서 그런 의존의 필요는 더욱 커진다. 의존과 더불어 '자립'도 중요한 자질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자립이 중요한 태도이기도 하지만 '의존'이 급진적 제자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존 와이어트의 표현을 빌면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의존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사랑과 보살핌과 보호에 전적으로 위존하여 이 세상에 들어왔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의존하는 인생의 단계를 거쳐 간다.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사랑과 보살핌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이것은 참담한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육체적 본성의 일부이며 하나님의 계획의 일면이다.(131)


그리스도께서도 갓난아이로 태어나 그런 모든 과정을 겪으셨다. 십자가에서조차.. 그러나 예수께서는 의존하되 위엄을 잃지 않는 본을 보이셨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라디아서 6장 2절




생각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힘이 쇠약해질 때 '의존'은 더욱 크게 다가올 것이다. 난 아직 내가 젊고 모든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고 도움을 겸손하게 구하고 협동하고 섬기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듯 하다. 문득 부모님을 어떻게 섬기고 있는가 돌아보게 된다. 또한 내 옆에 있는 이를 어떻게 돕고 있는가. 내게 의존할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가 돌아본다. 의존할 때 위엄을 잃지 않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건강한 정체성에서 비롯되고 그 이전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일게다. 가정교회 식구들에게 의존하는 구체적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또한 그들이 내게 의존하도록 길을 여는 것에는 어떤 지혜가 있을까?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사역들 속에서 나는 이 의존이란 숙제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이 명령이 오늘 내게 더욱 신선하게 다가온다.




제 8장 - 죽음


내용

존스토트는 제자의 특징 중 8번째, 마지막을 '죽음'으로  꼽았다.생명에 이르는 길은 바로 죽음이다. 삶과 죽음은 우리가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며 신비하고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다. 여섯가지 영역에서 죽음을 말해보자.
 

구원 - 하나님과 사귐을 막는 장벽이 죄이며 그 삯은 죽음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오셨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그분이 죽음으로 이루신 일이 우리의 것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자, 그분의 죽음을 통하여 살아 있는 자다.
 

제자도 - 예수님은 자기 부인을 대가로 진정한 자기 발견을, 죽음을 대가로 진정한 생명을 약속하신다.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는 죄와 전투를 벌이고, 그 죄와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철저함은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가 몸의 잘못된 행실을 죽이면 살 것이다"
 

선교 - 예수님은 자신이 고난받는 종의 예언을 성취할 것임을 분명히 아셨고, 선교에는 고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바울도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후4:12) "많은 열매를 맺으려면 씨가 죽어야 한다"
 

박해 - 여기서 말하는 박해는 복음을 위해 받게 되는 신체적 박해를 일컫는다. 박해를 받는 그리스도인이 모두 바울처럼 죽음에서 구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죽음의 한가운데에서도 생명을 경험할 수 있다. 지금도 약 2억명의 그리스도인이 국가의 압제 아래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
 

순교 - 계20:4에 의하면 순교당한 자들에게 새로운 세상에서 그들에게 특별한 영예가 주어질 것이다. 디히트리 본회퍼가 처형되던 날 그가 한말은 다음의 것이다. "이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내게는 생명의 시작이다"
 

유한성 - 죽음은 많은 사람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죽음이 공포가 아니다. 부활한 몸에 일어난 일은 어떤 면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그대로 일어날 것이다. 창조세계 전체가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될 것이다. 최고의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의 영광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156)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것이 된 영원한 생명이며, 우리 육체의 욕망을 죽임으로써 우리 것이 된 강력해진 생명이며, 우리 육체의 연약함과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 가운데 누릴 수 있는 내적인 생명력이며, 자신의 사명에 신실한 이들에게 약속된 풍성함이며, 박해 가운데에서 또 순교당할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위로이며, 새로운 창조 세계 안에서 누릴 궁극적인 부활 생명이다.


우리가 살고자 한다면 죽어야 한다. 죽음이 안내하는 생명의 영광을 볼 때에만 우리는 기꺼이 죽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이들"이다.


생각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젊은이들의 특징이다. 자신이 약해지고 노쇠하고 시간의 유한함을 절감할 때에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죽음'에 대해서 아주 진작에 말씀하셨고 그것이 두려워할 것이 아닌 영광의 문임을 알려주셨다. 그것은 이미 나에게 주어진 복음의 신비에 큰 일부이며,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열쇠인 것이다. 죽음은 어떻게 하면 삶을 잘 마무리할까라는 생각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며, 내가 어떤 업적을 남겼는가에 초점을 맞추게 하는 그 무언가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깨달음이 비로소 현실화되는 시간이며,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한 비밀의 답을 손에 쥐게 되는 놀라운 시작의 순간이다. 목숨의 끝은 그렇게 오지만, 생명을 소유한 제자가 살아가면서 제자답게 살지 못할 때, 몸의 죽은 행실과 죄의 영향력 아래에서 죽음과 절망을 경험한다. 그러나 매일의 묵상과 관계와 사역을 통해 거듭 그리스도의 생명을 경험한다. 이런 죽음과 생명의 신비가 그 날에 어떤 식으로 연속/비연속될지.... 그리스도인이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이들'이다. 로마서 8장과 고린도전서15장을 깊이 묵상하며 하루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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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3 10:07 2010/06/2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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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단순한 삶


내용

생명(life)과 삶(lifestyle)은 연결된 단어있고 뗄 수 없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는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삶이 적합한가? 그 생명이 새로운 것이라면, 그 삶 또한 새로워야 한다. 다음은 존스토트가 '단순한 삶에 대한 복음주의의 언약'을 요약한 내용이다.

1. 새로운 공동체: 우리는 교회가 하나님의 새로운 공동체가 되어 새로운 가치관과 새로운 기준과 새로운 삶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의도된 것임을 기뻐한다.

2. 개인의 삶: 우리는 어떤 규칙이나 규정도 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매일 약 1만 명이 굶어 죽는다는 사실에 비추어 단순한 삶을 살기로 결단한다.

3. 국제적인 개발: 우리는 수백만의 가난한 이들로 인해 충격을 받는다. 우리는 인간 개발 계획에 더 관대하게 기부하기로 결단한다. 하지만 정부의 활동도 꼭 필요하다.

4. 정의와 정치: 우리는 현재의 사회적으로 불의한 상황을 하나님이 혐오하시리라 믿으며, 변화가 올 수 있으며 와야 한다고 믿는다.

5. 복음 전도: 우리는 복음화되지 않은 수백만의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단순하기 살라는 부르심은 책임 있는 증인이 되라는 부르심과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6. 주님의 재림: 우리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가장 작은 자를 섬김으로써 그분을 섬긴 이들은 구언을 받으리라 믿는다. 구원받는 믿음은 섬기는 사랑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생각

위 언약이 생길 무렵... 로잔언약이 생긴 그 무렵 경제계에서는 프리드먼 같은 학자가 노벨상을 타던 때이다. 대처, 레이건 등에 의해 실험되고 확대발전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문제.. 거기서 파생되는 수많은 문제들, 전 지구의 빈부격차심화와 다시 고개를 드는 제국주의 등...어찌보면 위의 이야기들이 정말 문서에 형식적으로 있는 활자들... 복음주의자들의 지적만족을 위한 내용들로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삶으로 초대받았다는 메시지는 존 스토트나 어떤 이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고 살아내신 것이다. 제자라면 그 길을 걸어야 한다. 개인적 차원에서 '단순한 삶'과 관련된 부분은 리처드 포스터의 '돈,섹스,권력', '영적 훈련과 성장' 등에서 도움을 받는 것이 실제적일 것이고, 세상을 보는 원리에 대해서는 엘룰의 '하나님이냐 돈이냐'가 더욱 실제적 안내를 해줄 것 같다. 그러나 존 스토트가 성경에서 얻는 가치를 자신의 삶과 직결시키고, 그뿐만 아니라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이들과 연대하고, 공적 사역에서 운동화시켰다는 점은 무척 존경스럽고 배울만한 점이다.

단순한 삶을 위해 분투하는 지체들을 격려하고 존경한다. 내 삶에도 그런 구석이 좀 더 있길 바란다. 또한 미래에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를 보며 예수님처럼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내는 것을 좋아하고 배우고 싶어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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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3 17:20 2010/06/1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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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 창조 세계를 돌봄


내용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기본적 관계를 세우셨다. 바로 1)그분 자신과의 관계 2)서로와의 관계 3)선한 땅과 피조물들과의 관계이다. 타락으로 이 세 관계가 모두 왜곡되었다. 하나님의 회복 계획에는 하나님과 화해하고 서로 화해하는 것 뿐 아니라 신음하는 창조세계를 해방시키는 일 역시 포함되어 있다. '부활한 몸의 최종적인 운명에 대한 이해가 현재 우리 몸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치듯,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지식은 우리가 지금 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더 귀중하게 다루게 한다.'(64)


"땅은 여호와의 것이로다"(시24:1)와 "땅은 사람에게 주셨도다"(시115:16)라는 선언은 서로 모순되기보다는 보완적이다. 땅은 창조로 인해 하나님께 속하고 위임으로 인해 우리에게 속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분을 대신하여 그 땅을 보존하고 개발하도록 책임을 주셨다는 의미다. 두가지 반대 극단을 피하고 자연과의 더 나은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첫째, 우리는 자연을 신격화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 이는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동일시하는 범신론자, 자연세계를 영들의 거처로 삼은 정령숭배자, 뉴에이지운동가들의 실수이며 이 혼란은 창조주를 모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연을 만드셨기에 자연을 존중하나 우리는 자연을 경배하지 않는다.


둘째, 우리는 자연을 착취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인 것처럼 오만하게 자연을 대해서는 안된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있는 청지기로 우릴 부르셨다.


셋째, 인간과 자연의 올바른 관계는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다. 환경을 보존할 뿐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원을 개발해야 한다. 만물의 즐거움과 유익을 위해 창조 질서를 변화시키는 것은 고귀한 소명이며 예배의 표현이다. 창조 세계를 돌보는 일에는 창조주를 향한 우리의 사랑이 반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의할 점은, 하나님은 우리의 일이 예배의 표현이 되도록 의도하셨으며, 창조 세계를 돌보는 일에 창조주를 향한 사랑이 담기도록 하셨다. 그렇기에 일이 마치 우리 존재의 전부인 양 거기 매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건전한 성경적 가르침을 바탕으로 생태계의 위기를 주목해야 한다. '세계인구 성장의 가속화', '지구 자원의 고갈', '쓰레기 처리', '기후변화' 의 문제이다. 이에 대해 기독교 환경 단체를 후원하는 일 등과 아울러 개인적 차원에서의 책임은 무엇일까? 구약학자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환경 친화적 에너지 사용, 불필요한 기기의 전원 끄기, 윤리적으로 건전한 환경정책을 가진 회사의 식품/재화/용역을 구매하기, 환경 보호 협회에 가입하기, 불필요한 낭비피하고 재활용생활화하기' 등을 권면한다. 또한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한다면서, 예수의 제자라고 주장하면서 그분의 소유인 이 땅에 관심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이 나는 너무나 불가사의하다. 그들은 이 땅이 오용되는 현실에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낭비와 소비의 생활 방식으로 이 땅의 오용에 동참하고 있다.'라고 강하게 말한다.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신10:14)


 


생각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는 당위가 삶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지식이 축적과 설득의 과정이 필요한 시대인가. 나 스스로를 보아도 그렇다. 이런 성경적 당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야말로 상황 속에 복음을 살아내는 진정한 회심자가 아닐까. 그러나 이런 위기가 제자들에게는 필수불가결한 코스임에도 선택가능한 옵션으로 여기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만물을 향하신 하나님의 창조, 그리고 새창조의 계획에 눈은 떴으나 생활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는 얼마나 적은지. 그것은 과다생산과 소비, 지불의사와 능력... 등의 개념이 혼란스러운 현대 사회속에서 모종의 노예로 살고 있는 것을 반증한다. 한때 가정교회에서 주일에 플라스틱컵을 사용하도록 하고 주일봉사로 컵씻는 일을 하자는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그러들었다. 이런 창조적 봉사의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더 많이 더 두루 퍼지면 좋겠고 실천하면서 지속가능한 일들이 일어나야겠다. 지체들에게 부끄럽다. 하나님께 죄송하다. 창조세계에 대한 책임있는 자세와 삶이 바로 예배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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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3 17:18 2010/06/1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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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성숙


내용


세계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나 우리는 깊이 없는 성장 즉, '승리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 세계 교회 지도자들이 수적 성장에 상응하는 제자도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골로새서 1장 28-29절을 통해 보자.


첫째 성숙의 본질은 무엇인가? 바울 사도는 영적 성숙을 그리스도안에서의 성숙, 즉 그리스도와 성숙한 관계를 맺는 것이라 부른다. 성숙이란, 그리스도를 예배하고 신뢰하고 사랑하고 순종함으로 그분과 성숙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성숙하는가? 패커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지적했듯이 "우리의 하나님이 왜소하기 때문에 우리는 왜소한 그리스도인"이다. 거짓되고 왜곡된 예수를 어설프게 모방하는 일이 많다. 진정한 성숙에 이르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선하고 참된 시각이 필요하다. 그분의 존재(하나님의 형상이자 하나님의 충만함)로 인해, 그분이 하신 일(창조 세계를 존재하게 하시고 화해를 가져오신)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는 이중적 우월성을 가진다. 그는 우주의 머리이며 동시에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예수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답은 '성부께서 그려내신 성자의 모습에 성령이 색을 입히신'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셋째, 이 성숙에 대한 부르심은 누구에게 주어진 것인가? 바울은 기독교 엘리트주의를 혐오하고 반대했다. 그는 영지주의 용어인 "텔레이오스"를 그대로 가져와 '각 사람' 즉 모든 사람에게 적용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숙은 특별한 소수에게 열려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다. 우리가 안수를 받았든 평신도 지도자든 간에, 우리에게는 그가 받은 것에 견줄 만한 목회적 책임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의 목회적 목표에 주목해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회심자를 얻고 교회를 세우고 떠나는 것으로 보이나 그가 간절히 바란 것은 전도를 넘어 제자도로 나가는 것이며,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우리에게는 이중적 책임이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자가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한 목표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한 우리 목회 사역의 목표이기도 하다.


생각

모든 이들에게는 사도바울이 받은 책무에 견줄만한 목회적 책임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감사하고 걱정하게 된다. 기독교엘리트주의를 반대하면서도 특별한 이들에게 이런 의무가 주어졌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내 생각에 자리잡는 것은 아닐런지. 교회에서 '간사'라는 타이틀로 사역을 하면서 늘 기독교엘리트주의를 경계하였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성경과 기독서적을 탐독하고 사회에 대한 소양을 위해 애쓰지만.. 그러면서도 한국교회와 사회가 갖는 한계를 절감하면서 타이틀을 따야 뭔가 할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진다. 또 실제적으로.. 선배들은 그렇게 늘 나에게 권유하고 그게 쉽고 빠르다고 말한다. 글쎄.. 지금까지 한 분투가 아까워서 그 길을 가지 않음도 아니다. 이런 영광스런 책임이 누구나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열렸는데... 그런 논쟁과 권유와 내 고민이 무어 그리 중요한가. 다 잊자. 모두 잊어버리자. 교회사역을 하면서 기도와 묵상과 연구시간이 더 줄어들었다는게 너무 아이러니하다. 나 스스로가 더욱 주님께만 매달려 성숙할 수 있는 환경으로 몰자. 그것이 분명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바이리라.

이 모든 책임이 우리 사랑하는 가정교회 식구 한사람 한사람에게 모두 있다는 사실에 흥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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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2 11:37 2010/06/1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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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닮음



내용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그리스도처럼 되기를 바라신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35)


로마서8:29, 고후3:18, 요일3:2에서 언급하듯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셨다. 그것은 영원히 예정된 하나님의 목적이다. 또한 성령을 통해 지금 우리를 변화시키신다.  그리고 그분이 자신과 동역하도록 부르신 것이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되어야 한다.'(37)


하나님에게는 분명한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미리 정하심을 받았다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우리가 성령에 의해 변화되고 있다는 하나님의 역사적인 목적, 또한 우리가 그분처럼 될 것이라는 최종적인 종말론적 목적이다. 이것이 성경적 기초이다.


신약에서 바울이 가르치는 바는, 우리는 빌립보서 2장의 말씀처럼 그분의 성육신하신 위대한 겸손의 본을 따르도록 본을 받았으며, 제자들과의 마지막밤에 발씻김으로 보이신 섬김의 삶을 닮아야 한다. 또한 자기 몸을 내어주신 십자가의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 베드로가 가르친 것처럼 여러 문화에서 박해가 점증하고 있는 오늘날 상황속에서 부당하게 고난당하신 그리스도를 닮아가라는 명령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또한 요한의 복음에 있는 말씀처럼 우리가 세상에 보냄을 받았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성육신적 선교의 정신이다.


그리스도를 닮아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 세가지 결과는 첫째가 고난의 신비요, 둘째가 복음전도의 도전이며, 마지막으로 성령의 내주하심이다.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를 닮은 존재로 만드시는 과정의 일부이다. (43) 복음전도의 도전이라 함의 내용은, 존 풀톤의 말을 빌면 ' 소통하는 것은 무엇보다 사람이지 말이나 개념이 아니다'. 즉 가장 효과적인 선포는 자신이 선포한 대로 사는 사람들의 선포이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바로 성령의 내주, 충만이 그 답이다.


생각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을 추상적으로 말하지 말자. 성경은 분명하게 그리스도인 삶의 목적이 아들 예수를 닮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사실을 머리에 깊이 새기고 마음에 새기고 행동에 새기자. 겸손의 삶, 섬김의 삶, 사랑의 삶... 벅차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으로 감당해야 한다. 1장에서 불순응이라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했다면 2장에서는 세상에 있으나 속하지 않기 위해 인생의 명확한 목표, 비전이 있어야 함을 깨닫는다. 그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 그분을 닮는 것이다. 다른 길, 다른 생명이 아니라 바로 예수가 길, 진리, 생명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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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1 15:40 2010/06/1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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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도, 존스토트, IVP

제 1장 불순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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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존스토트는 그의 마지막 책 'the radical disciple'에서 급진적 제자의 첫째 특성을 '불순응'(non-conformity)으로 일컫는다. '세상에서 도피하여 거룩함을 보존하려해서도 안되고, 세상에 순응하여 거룩함을 희생해서도 안된다'는 그의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성경의 율법서, 예언서, 예수님의 가르침, 사도들의 가르침에 나타난 부르심-주변문화를 따르지 말고 타협하지 말고 참여하여 그것을 바꾸라는 부르심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맞서야 할 네가지 현대사상을 이야기한다.

그 첫째는, 모든 '-주의'가 타당성이 있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다원주의'이다. 다원주의는 유일하고 최종적이라는 기독교의 주장을 순진한 오만이라 여긴다. 이에 대해 우리는 개인적 우월감을 비치지 않는 지극한 겸손으로 대하되 그분의 유일한 성육신, 유일한 속죄, 유일한 부활, 그의 유일한 자격, 그리고 그 모든 최종성에 대해 계속 주장해야 한다.



 

둘째, 영적인 삶을 질식시킬 만큼 물질적인 것에 사로잡혀 있는 '물질주의'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바울이 경고했듯 검소하고 관대하며, 자족하는 생활방식을 이어가야 한다.


셋째, '윤리적 상대주의'이다.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절대적 기준이 잠식당하고 있다. 특히 1960년대 이후 성혁명 이후 이 부분에서 급격한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윤리적인 결정이 완벽할 수는 없으나 각각의 상황에 성경적 원리를 적용하는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그리스도인의 행동의 토대는 바로 '예수가 주님'이시라는 사실에 있다. 교회 앞에 놓인 질문은 '누가 주님인가'라는 것이다. 문화,체계,기준,생활방식이 세상의 방식과 주인되신 주님이 기뻐하시는 방식 두가지로 나뉜다. 급진적 제자들의 선택은 그리 어렵지 않다.


넷째, '나르시시즘'의 도전이다. 이것은 자아실현의 욕구를 강조한 인간 잠재력 회복 운동으로 나타나서 뉴에이지 운동의 편승을 이끌었다. 이런 가르침이 교회에 침투해서 하나님과 이웃사랑뿐 아니라 '자신도 사랑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말세에 나타나는 징표 중 하나다.(딤후3:2) 아가페 사랑의 의미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자기긍정과 자기부인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즉, 창조와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있게 된 것은 모두 긍정하고, 타락으로 인한 것은 부인해야 한다.



이런 풍조들 앞에서 우리는 나약하게 세상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철저하게 세상을 따르지 않는 삶으로 부르심을 받는다. 예수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옹호하는 진리의 공동체로 다원주의에 맞서라! 검소한 순례자의 공동체가 되어 물질주의의 도전에 맞서라!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 나르시시즘에 맞서라!



생각

우리가 거슬러야 할 현대의 4풍조가 내 안에 가득함을 본다. 성경의 진리에 뿌리박지 못하여 상대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욕구로 사역과 일들을 벌이기도 하며, 다른 이를 섬기는 것조차 내 이익을 위한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부인을 강조하고 그것의 당위를 알지만 이기적이고 내 인정과 명예에 집착하는 모습을 본다. 내가 속한 공동체는 어떨까. 우리 가정교회는 이런 현대의 4풍조에 어떻게 맞서고 있는가. 우리 가정교회는 우리 나들목은..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그런 공동체로 살기에 그저 그래야겠다는 용기가 선언만 있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 같다. 구체적인 행함... (그것을 요즘은 대안이라고들 많이 말하지) 그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위 4가지에 맞서기 위해서는 말씀에 천착하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시작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공동체 안에서 나누고 그 연구된 바가 삶으로 열매맺는 것.... 서로에게 도전하고 서로 앞에서 고백하는 그런 거...  짧은대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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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0 12:49 2010/06/10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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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의 책으로 영성훈련을 탐하다
영성훈련핸드북, 애들 알버그 칼훈, 2007 I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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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훈련을 어찌 책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좋은 안내서들이 많습니다. 영성훈련자체를 잘 해설한 책들도 있고, 깊은 영성이 베인 좋은 설교를 책으로 만든 형태도 얼마든지 많습니다. 잘 알려진 ‘영적 성장과 훈련’을 마스터한 사람이라면 리처드 포스터의 ‘기도’라는 책이나 ‘신앙고전연구 52선’, 최근에 출간한 ‘영성을 살다’란 책까지 섭렵할 마음이 날 것입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경건주의 저자들의 책들도 있군요. 그들의 책도 우리에겐 많은 유익을 줍니다. 엔드류 머레이, 이 엠 바운즈, 오스왈드 챔버스와 같은 저자들의 책들도 그러합니다. 퀘이커교도나 메노나이트 계열의 사람들도 그들의 전통에 따라 영성훈련의 방법을 갖고 있고 그들의 정신적 영향력을 미친 리더들의 책도 매우 많이 있습니다.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토머스 머튼 같은 20세기 수도사도 있습니다. 한국에 잘 알려진 헨리나우엔의 통찰은 익히 잘 아실 겁니다. 유대교에 뿌리를 두면서 기독교의 다리를 놓는 사람으로는 아브라함 혜셀과 같은 사람의 책들이 우리의 영적 지평을 넓혀줄 것입니다. 아주 몇 명만 떠올려도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전통과 방법이 있군요. 이런 깊고도 넓은 세계를 실용적으로 소개할 방법이 없나를 고민하는 것도 아주 어색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권의 책을 통해 영성훈련의 종류와 각각의 정의를 좀 더 쉽게 전할 수 있다면 환영할 분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책은 ‘영성 훈련 핸드북’이란 책입니다. 그 책의 서문에는 강력한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의 열망을 발견하라’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이기적 욕구에서 나오는 열망으로 들릴 수도 있겠네요. 여기서의 ‘열망’은 우리 내면에 깊은 열망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을 향한 갈망임을 보게 된다는 맥락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 합니다. 목차를 살펴보죠.


1부_예배하기(Worship)
 경축/감사/성만찬/삶의규칙/안식일/예배
2부_하나님께 나를 열기(Open)
 관상/반추/일기쓰기/쉼/피정/자기 돌보기/단순한 삶/속도 늦추기/배우려는 자세/플러그 뽑기
3부_거짓 자아 포기하기(Relinquish)
 고백과 자기 성찰/초연/분별/은밀함/침묵/고독/영성지도/복종
4부_다른 사람들과 내 삶을 나누기(Share)
 서로를 의탁하는 동반자/순결/공동체/언약 그룹/제자 삼기/환대/멘토링/섬김/소그룹/영적 친구/연합/증거
5부_하나님의 말씀 듣기(Hear)
 성경공부/경건한 독서/묵상/암송
6부_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기(Incarnate)
 환경 돌보기/긍휼/혀 길들이기/겸손/정의/청지기적 삶/진실을 말하기
7부_기도하기(Prayer)
호흡기도/향심기도/관상기도/대화식기도/금식/정해진 시간에 드리는 기도/내적 치유의 기/중보기도/미로기도/예전기도/기도 짝/성경을 따라하는 기도/회복의 기도/보행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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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많은 내용을 담고 있군요. 7개의 부에 붙어있는 영어제목을 그대로 읽으면 W-O-R-S-H-I-P, 즉 예배(혹 경배, Worship)란 말이 됩니다. 각 내용들은 영성 훈련의 여러 영역들을 7개의 영역으로 분리 집결한 것입니다. 와, 영성 훈련의 영역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혹시 알고 계셨나요? 때로 큐티와 기도, 성경읽기 정도만 영성훈련의 영역으로 생각하신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기도를 많이 하다보면, 성경을 많이 읽다보면 여러 기도를 경험하게 되고 묵상과 암송의 더 넓고 깊고 다양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좀더 세밀하게 우리의 영적 감각을 일깨우고 다듬을 수 있는 영역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진전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요즘은 흔히들 ‘일상의 예배’란 말을 많이 합니다. 삶 속에서 예배해야 한다는 대전제에 뿌리를 둔 말이지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말이 하나의 핑계가 되어서 예배를 훈련하고 영성을 계발하고 즉, 하나님안에 거하여 그분과 만나고 사랑하는 감각에 눈뜨는 것에 관심을 기울기보다는 그냥 피곤하고 지친 인생을 살아내기에 급급한 것을 ‘일상의 예배’라고 만족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유진 피터슨 등이 그의 여러 책에서 전반적으로 언급하는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이란 아무런 훈련도 되어 있지 않은 무책임한 제자들에게서 발견되지 않고, 날마다 자신을 훈련하는 자들에게서 보이는 특성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작은 소주제들을 어떻게 훈련하란 말일까요? 이 책은 다음과 같이 훈련의 길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경축’이란 주제로 가면, 경축의 열망, ‘경축의 정의’, ‘관련 성경구절’, ‘실천내용’, ‘하나님이 주시는 열매’가 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경축의 열매 중 이런 문장이 있네요. ‘결핍보다는 풍요의 정신으로 산다’, ‘비판이나 부정적 자세의 중독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저는 ‘중독’이란 말에 동그라미를 쳤습니다. 비판적 자세가 중독되면 매사를 그렇게 보기 때문에 기뻐하는 삶을 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하기 때문입니다. 경축에 대한 표 외에도 경축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이 1,2페이지 걸쳐 나와있습니다. 그 글을 읽은 후에는 ‘묵상을 위한 질문’이 여러 개가 있습니다. 각 질문들은 매우 필요적절하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영성훈련’이란 내용의 지시, 명령이 있네요. ‘경축’에 대한 영성훈련이 6개가 제시되어 있는데 그중에 3번은 ‘교회력을 익히라. 올해의 사순절, 부활절, 오순절, 강림절, 성탄절, 공현절, 만성절을 마음껏 경축할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 보라. 홀로 혹은 친구들과 함께 하나님을 경축할 수 있는 방법을 계획해 보라’라고 되어 있군요!


이런 식으로 70개에 가까운 영성훈련 내용들이 정의되어 있고, 각각의 묵상과 훈련 방법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각 내용은 5,6페이지 정도로 분류되어 있어서 자신에게 관심이 있고 필요한 부분을 발췌독하여 시작할 수 있습니다. 7개의 영역이 같은 내용과 맥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7개의 각 덩어리별로 훈련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제가 읽고 훈련을 시도하면서 느낀 바로는, 먼저 한 덩어리씩 한꺼번에 훈련하는게 좋은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이책의 장점을 알려야겠군요. 이 책에는 부록이 10가지가 있습니다.


1) 영적 성장 계획표
2) 교회를 위한 영성 훈련 8주 계획
3) 영적 멘토를 위한 조언
4) 소그룹을 위한 ‘영성 훈련 핸드북’ 사용법
5) 예배를 위한 하나님의 이름들
6) 서로 … 하라
7) 기도의 자세
8) 하나님과 ‘사랑의 띠’ 시간 보내기
9) 금식 기도를 위한 도움 자료
10) 변화의 계절, 단계, 연령


예배와 관련된 강의요청이 종종 있어서 준비할 때면 이 부록의 도움을 심심치 않게 받습니다. 저는 ‘예배를 위한 하나님의 이름들’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곤 했지요. 성경에 나타난 수많은 하나님의 이름을 볼 때마다 큰 감격에 빠지곤 합니다. 가정교회에서 함께 훈련해보면 어떨까요? 부록에 좋은 지침들이 많이 나와 있어서 목자님들께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결코 책을 보는 것으로 훈련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훈련해야 하지요. 한 가지 영역을 훈련하고 훈련해서 몸에 익을 때까지 하는 것이고, 그 유익을 주변인들에게 널리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 훈련을 함께 할 사람이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가족과 함께 영성훈련하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단짝과 훈련하는 기쁨을 떠올려보세요. 다른게 아닌 이런게 바로 흥분되는 일입니다. 가정교회에서 함께 훈련하는 것을 거듭 추천해 봅니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매우 실용적인 측면이 있어서 큰 바다와 같은 영성훈련의 여정을 너무 가볍게 보이게 할까 우려됩니다. 그러나 영성훈련의 영역에 대한 이해와 각각이 성경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또 어떤 그림을 미리 갖고 훈련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데는 너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권의 책으로 영성훈련을 탐해봤습니다. 이제 이 책을 통해 영성훈련을 시작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몫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훈련을 기뻐하시고 인도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Posted by daegwi

2010/02/18 14:52 2010/02/1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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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모 3집 어디에가 나왔습니다. 조준모님은 한동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인 언어학자이십니다.
98년부터 직접 뵜으니 오랜 인연입니다.
제 앨범 '가난한자가 들어간다'의 보컬로, <삶이 묻어난 예배, 예배가 묻어난 삶>에 수록된
'예수, 생명의 양식'의 보컬로 언제나 제 음반에 타이틀을 장식해주셨고
제게 음악적으로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반가운 새앨범이 나왔습니다.
제가 쓴 짧막한 앨범리뷰가 앨범소개 전면에 나와 있네요.
관심있는 분들은 아래 주소에 가시면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http://mall.godpeople.com/mall/?G=12517660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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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0 10:08 2009/09/1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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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라이트의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나라]를 2주간에 걸쳐 틈나는대로 읽었다. 하나님나라의 도래에 대한 것, 주님의 통치 등에 대한 개념은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우리 몸의 부활과 궁극적 소망에 대해서 명쾌한 그림을 충분히 갖지 못하고 있음을 새삼 더 느꼈다.

수요공동체예배 설교의 주제도 '부활에 눈뜨라'라는 제목으로 준비하고 있었기에 이 책은 수월하게, 흥미롭게, 역동적으로 술술 읽혀졌다.

게다가 톰라이트의 다른 여러 저술들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 책을 통해 더 저자의 명성이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그림을 더 분명하게 갖고 싶은 이들, 현재 하는 모든 일에 허무함을 느끼는 이들, 예수의 부활과 내 몸의 부활에 대해 무지한 이들에게 무한한 도움이 될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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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부 배경 설정
1. 잘 차려 입었는데 갈 곳이 없다?
들어가는 말 | 희망에 대한 혼란: 교회 바깥의 세계 | 여러 종류의 믿음들

2. 낙원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다?
희망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혼란 | 어떠한 선택들이 가능한가? | 혼란의 영향 | 혼란이 지닌 더 큰 함의들 | 핵심 질문들

3. 역사적 배경에서 살펴본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희망
들어가는 말 | 고대의 이교주의와 유대교에서 바라본 부활과 죽음 이후의 삶 |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가졌던 희망의 놀라운 특징

4. 부활절의 특이한 이야기
선례가 없는 이야기들 | 부활절과 역사 | 나오는 말

2부 하나님의 미래 계획
5. 우주의 미래: 진보인가, 절망인가?
들어가는 말 | 선택1: 진화론적 낙관주의 | 선택2: 이동하는 영혼

6. 이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 것
들어가는 말 | 희망의 근본적 구조 | 파종과 추수 | 승리의 전쟁 | 하늘의 시민-땅의 식민화 | 만유 안에 계실 하나님 | 새로운 탄생 | 하늘과 땅의 결혼 | 나오는 말

7. 예수님, 천국, 새 창조
승천 | ‘재림’은 무엇을 말하는가?

8. 그분이 나타나실 때
들어가는 말 | 오심, 나타남, 드러남, 왕의 현존

9. 심판하러 오시는 예수님
들어가는 말 | 재림과 심판

10. 우리 몸의 구속
들어가는 말 | 부활: ‘죽음 이후의 삶’ 이후의 삶 | 고린도서에서 말하는 부활 | 부활: 후대의 논쟁들 | 부활을 다시 생각하다: 누가, 어디서, 무엇을, 왜, 언제 그리고 어떻게

11. 연옥, 낙원, 지옥
들어가는 말 | 연옥 | 낙원 | 희망을 넘어, 동정을 넘어 | 나오는 말: 인간의 목적과 새 창조

3부 희망의 실천: 부활과 교회의 사명
12. 구원을 다시 생각하다: 하늘, 땅 그리고 하나님 나라
들어가는 말 | ‘구원’의 의미 | 하나님 나라

13. 하나님 나라를 위한 건설
들어가는 말 | 정의 | 아름다움 | 전도 | 나오는 말

14. 사명을 위한 교회의 재구성(1): 성경적 근거
들어가는 말 | 복음서와 사도행전 | 바울

15. 사명을 위한 교회의 재구성(2): 미래를 살다
들어가는 말: 부활절을 어떻게 경축할 것인가? | 공간-시간-물질: 구속된 창조계 | 부활과 선교 | 부활과 영성

부록: 두 종류의 부활절 설교

성경 색인
인명 색인
주제 색인


톰 라이트

저명한 역사가이자 신약학자로 활동하는 영국 성공회 더럼(Durham)의 주교로,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맥길 대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쳤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참사회원 신학자(Canon Theologian)로도 활동했던 그는, 영국의 기독교 서점에 톰 라이트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로 인기 있는 다작의 저술가이자 방대한 학술 서적과 대중적 저술 모두에서 호평을 받는 흔치 않은 인물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에 관한 물음’이라는 방대한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으며, 현재는 제3의 역사적 예수 탐구와 바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선두 주자로 인정받는 학자다. 아울러 ‘21세기의 C. S. 루이스’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는, 이미 21세기에 가장 주목받는 변증가로 자리 잡았다.
저서로는 「톰 라이트와 함께하는 기독교여행」, 「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정의」(IVP 역간),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에 관한 질문’ 프로젝트의 일부인 「신약 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이상 크리스챤다이제스트 역간) 및 「Jesus 코드」(성서유니온 역간), 「예수」, 「나를 따르라」(이상 살림 역간), The Cross and the Colliery 외에도, 신약 성서의 메시지를 쉽게 이해하고 접할 수 있도록 저술하여 큰 호평을 받은 주석 시리즈인 ‘The New Testament for Everyone’(전 14권, 이상 한국 IVP 역간 예정)이 있다.

Posted by daegwi

2009/08/21 13:27 2009/08/2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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