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성숙
내용
세계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나 우리는 깊이 없는 성장 즉, '승리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 세계 교회 지도자들이 수적 성장에 상응하는 제자도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골로새서 1장 28-29절을 통해 보자.
첫째 성숙의 본질은 무엇인가? 바울 사도는 영적 성숙을 그리스도안에서의 성숙, 즉 그리스도와 성숙한 관계를 맺는 것이라 부른다. 성숙이란, 그리스도를 예배하고 신뢰하고 사랑하고 순종함으로 그분과 성숙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성숙하는가? 패커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지적했듯이 "우리의 하나님이 왜소하기 때문에 우리는 왜소한 그리스도인"이다. 거짓되고 왜곡된 예수를 어설프게 모방하는 일이 많다. 진정한 성숙에 이르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선하고 참된 시각이 필요하다. 그분의 존재(하나님의 형상이자 하나님의 충만함)로 인해, 그분이 하신 일(창조 세계를 존재하게 하시고 화해를 가져오신)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는 이중적 우월성을 가진다. 그는 우주의 머리이며 동시에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예수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답은 '성부께서 그려내신 성자의 모습에 성령이 색을 입히신'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셋째, 이 성숙에 대한 부르심은 누구에게 주어진 것인가? 바울은 기독교 엘리트주의를 혐오하고 반대했다. 그는 영지주의 용어인 "텔레이오스"를 그대로 가져와 '각 사람' 즉 모든 사람에게 적용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숙은 특별한 소수에게 열려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다. 우리가 안수를 받았든 평신도 지도자든 간에, 우리에게는 그가 받은 것에 견줄 만한 목회적 책임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의 목회적 목표에 주목해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회심자를 얻고 교회를 세우고 떠나는 것으로 보이나 그가 간절히 바란 것은 전도를 넘어 제자도로 나가는 것이며,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우리에게는 이중적 책임이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자가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한 목표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한 우리 목회 사역의 목표이기도 하다.
생각
모든 이들에게는 사도바울이 받은 책무에 견줄만한 목회적 책임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감사하고 걱정하게 된다. 기독교엘리트주의를 반대하면서도 특별한 이들에게 이런 의무가 주어졌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내 생각에 자리잡는 것은 아닐런지. 교회에서 '간사'라는 타이틀로 사역을 하면서 늘 기독교엘리트주의를 경계하였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성경과 기독서적을 탐독하고 사회에 대한 소양을 위해 애쓰지만.. 그러면서도 한국교회와 사회가 갖는 한계를 절감하면서 타이틀을 따야 뭔가 할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진다. 또 실제적으로.. 선배들은 그렇게 늘 나에게 권유하고 그게 쉽고 빠르다고 말한다. 글쎄.. 지금까지 한 분투가 아까워서 그 길을 가지 않음도 아니다. 이런 영광스런 책임이 누구나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열렸는데... 그런 논쟁과 권유와 내 고민이 무어 그리 중요한가. 다 잊자. 모두 잊어버리자. 교회사역을 하면서 기도와 묵상과 연구시간이 더 줄어들었다는게 너무 아이러니하다. 나 스스로가 더욱 주님께만 매달려 성숙할 수 있는 환경으로 몰자. 그것이 분명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바이리라.
이 모든 책임이 우리 사랑하는 가정교회 식구 한사람 한사람에게 모두 있다는 사실에 흥분이 된다.
Posted by daegw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