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균형


내용


'균형'이라는 장에서 존스토트는 제자의 특징을 6가지로 이야기한다. 즉 다음과 같다.

1. 성장해야 하는 갓난아기
2. 교제를 나누어야 하는 산 돌
3. 예배드려야 하는 거룩한 제사장
4. 증거해야 하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5. 거룩해야 하는 거류민과 나그네
6. 시민이 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종


갓난아기로 비유함은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거듭남이란 사람의 인격에 성령이 가져다주시는 깊은 내면의 근본적인 변화다. 요점은 우리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성품과 지식을 통해서 거듭난 존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장이 필요한 갓난아이들처럼 다시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 즉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성장에 필수적인 것이다. 또한 교회를 세우시는 하나님을 주목하라. 어떤 것도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다. 우리는 어떻게 이 교회에 속하게 되는가. 세례를 통하여 가시적이고 외적인 교회에 속한다. 또한 우리는 서로에게 속해 있다. 건물을 상상할 때 하나님의 건물의 산 돌이란 이미지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제사장은 두가지 특권 즉,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특권, 희생 제사를 드리는 특권을 누린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제사장과 백성 사이의 이런 구별은 폐지되었다. 교회 전체가 제사장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도록 부름받은 거룩한 제사장이다. 그러나 제자의 모습이 아기들로서 개인적 성장, 건물의 돌같은 교제,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예배 뿐인가? 우리는 그분의 증인이 되도록 '거룩한 나라'로 부름을 받았다.


또한 이 땅의 거류민과 나그네가 되었다. 하늘의 거룩한 시민권에 대한 개념은 종종 세상적인 책임에서 손을 떼게 하는 오류를 범하곤 했다. 그러나 우리는 순례자임과 동시에 이 땅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갖고 있다.그것은 양심적인 하나님의 '종들'로 묘사된다. 자유를 오용하지 말되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며 하나님의 종으로서, 동료신자들, 하나님, 권세자들 등 모든 사람을 합당하게 공경해야 한다.


우리의 실패는 거의 모두 제자의 포괄적인 정체성을 잊어버리는 태만에서 나온다. 각 쌍들에서 우리는 균형을 유지하고, 한쪽을 희생함으로써 다른 쪽을 강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개인적인 제자와 공동적인 교제로, 예배와 일로, 순례자와 시민 둘 다로 부름받는다.



생각

종종 하나님나라의 특성이 우리가 한가지 개념으로 치닫고 싶어하는 본성에 위배되기에 이해되지도 만져지지도 않을 때가 있다. 균형을 말하는 장에서도 그런 점은 두드러진다. 한가지.. 많은 내용을 짧게 담고자 하니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역동적이지 못한 듯 하다. 그러나 포괄적 정체성을 잊는 것 자체가 태만함이란 사실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쉽게 생각하고 싶고, 쉽게 결론내리고 싶고, 쉽게 답을 얻고 결과를 얻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내가 이해하는 것이 전부라고 착각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나는 동시에 균형에 대해 신중함을 보이는 태도로 인해 아무런 액션도 못하고 주저하는 이가 많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 땅의 정치 문제에 있어서도, 경제문제에 있어서도 균형을 유지하려는 지적 만족에 머물러서 결국 아무런 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말이다. 개인적 경건이 부재하면서 공동체만 강조하고 이땅의 시민임을 강조하지만 땅에 너무 발을 붙인 나머지 타협하는 겉멋든 나그네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아닌가. 이 모든 균형에 대한 이해들은 이런 몇번의 요약과 짧은 대화로 해결되거나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글쎄.. 우리의 다음세대는 이것에 대해 치열한 토의도 할 필요없이 그들이 자라가는 신앙 공동체에서 자연스럽고 호흡처럼 이런 감각을 배우고 익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성장, 교제, 예배, 일, 나그네, 시민... 이 항목들에 나를 비춰본다. 하나님앞에서 그분의 눈으로 나를 보자....

Resident Aliens - "하나님의 나그네된 백성"이 이 장에 이어서 읽을 책이 아닐까. 추천해본다. 그 저자들이 쓴 '십계명', '주여, 기도를 가르치소서'가 같은 맥락의 책.




제7장 - 의존


내용


존스토트는 자신이 어느 주일 아침 우연히 넘어지면서 수술을 받고 한동안 재활치료를 받은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철저하게 다른 이들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경험을 얻고, 제자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의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도 그러셨던 것처럼 노년에 들면서 그런 의존의 필요는 더욱 커진다. 의존과 더불어 '자립'도 중요한 자질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자립이 중요한 태도이기도 하지만 '의존'이 급진적 제자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존 와이어트의 표현을 빌면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의존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사랑과 보살핌과 보호에 전적으로 위존하여 이 세상에 들어왔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의존하는 인생의 단계를 거쳐 간다.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사랑과 보살핌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이것은 참담한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육체적 본성의 일부이며 하나님의 계획의 일면이다.(131)


그리스도께서도 갓난아이로 태어나 그런 모든 과정을 겪으셨다. 십자가에서조차.. 그러나 예수께서는 의존하되 위엄을 잃지 않는 본을 보이셨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라디아서 6장 2절




생각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힘이 쇠약해질 때 '의존'은 더욱 크게 다가올 것이다. 난 아직 내가 젊고 모든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고 도움을 겸손하게 구하고 협동하고 섬기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듯 하다. 문득 부모님을 어떻게 섬기고 있는가 돌아보게 된다. 또한 내 옆에 있는 이를 어떻게 돕고 있는가. 내게 의존할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가 돌아본다. 의존할 때 위엄을 잃지 않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건강한 정체성에서 비롯되고 그 이전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일게다. 가정교회 식구들에게 의존하는 구체적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또한 그들이 내게 의존하도록 길을 여는 것에는 어떤 지혜가 있을까?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사역들 속에서 나는 이 의존이란 숙제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이 명령이 오늘 내게 더욱 신선하게 다가온다.




제 8장 - 죽음


내용

존스토트는 제자의 특징 중 8번째, 마지막을 '죽음'으로  꼽았다.생명에 이르는 길은 바로 죽음이다. 삶과 죽음은 우리가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며 신비하고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다. 여섯가지 영역에서 죽음을 말해보자.
 

구원 - 하나님과 사귐을 막는 장벽이 죄이며 그 삯은 죽음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오셨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그분이 죽음으로 이루신 일이 우리의 것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자, 그분의 죽음을 통하여 살아 있는 자다.
 

제자도 - 예수님은 자기 부인을 대가로 진정한 자기 발견을, 죽음을 대가로 진정한 생명을 약속하신다.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는 죄와 전투를 벌이고, 그 죄와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철저함은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가 몸의 잘못된 행실을 죽이면 살 것이다"
 

선교 - 예수님은 자신이 고난받는 종의 예언을 성취할 것임을 분명히 아셨고, 선교에는 고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바울도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후4:12) "많은 열매를 맺으려면 씨가 죽어야 한다"
 

박해 - 여기서 말하는 박해는 복음을 위해 받게 되는 신체적 박해를 일컫는다. 박해를 받는 그리스도인이 모두 바울처럼 죽음에서 구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죽음의 한가운데에서도 생명을 경험할 수 있다. 지금도 약 2억명의 그리스도인이 국가의 압제 아래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
 

순교 - 계20:4에 의하면 순교당한 자들에게 새로운 세상에서 그들에게 특별한 영예가 주어질 것이다. 디히트리 본회퍼가 처형되던 날 그가 한말은 다음의 것이다. "이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내게는 생명의 시작이다"
 

유한성 - 죽음은 많은 사람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죽음이 공포가 아니다. 부활한 몸에 일어난 일은 어떤 면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그대로 일어날 것이다. 창조세계 전체가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될 것이다. 최고의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의 영광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156)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것이 된 영원한 생명이며, 우리 육체의 욕망을 죽임으로써 우리 것이 된 강력해진 생명이며, 우리 육체의 연약함과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 가운데 누릴 수 있는 내적인 생명력이며, 자신의 사명에 신실한 이들에게 약속된 풍성함이며, 박해 가운데에서 또 순교당할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위로이며, 새로운 창조 세계 안에서 누릴 궁극적인 부활 생명이다.


우리가 살고자 한다면 죽어야 한다. 죽음이 안내하는 생명의 영광을 볼 때에만 우리는 기꺼이 죽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이들"이다.


생각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젊은이들의 특징이다. 자신이 약해지고 노쇠하고 시간의 유한함을 절감할 때에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죽음'에 대해서 아주 진작에 말씀하셨고 그것이 두려워할 것이 아닌 영광의 문임을 알려주셨다. 그것은 이미 나에게 주어진 복음의 신비에 큰 일부이며,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열쇠인 것이다. 죽음은 어떻게 하면 삶을 잘 마무리할까라는 생각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며, 내가 어떤 업적을 남겼는가에 초점을 맞추게 하는 그 무언가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깨달음이 비로소 현실화되는 시간이며,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한 비밀의 답을 손에 쥐게 되는 놀라운 시작의 순간이다. 목숨의 끝은 그렇게 오지만, 생명을 소유한 제자가 살아가면서 제자답게 살지 못할 때, 몸의 죽은 행실과 죄의 영향력 아래에서 죽음과 절망을 경험한다. 그러나 매일의 묵상과 관계와 사역을 통해 거듭 그리스도의 생명을 경험한다. 이런 죽음과 생명의 신비가 그 날에 어떤 식으로 연속/비연속될지.... 그리스도인이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이들'이다. 로마서 8장과 고린도전서15장을 깊이 묵상하며 하루를 보내자....

Posted by daegwi

2010/06/23 10:07 2010/06/2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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